여기서 그의 방송 일괄 하차가 단순히 '블랙리스트'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예능의 대세는 '웃자고 내뱉는 농담'이 차지하고 있다. 소위 예능계의 투톱이라는 강호동 유재석 역시 웃음으로 버무려진 짧은 단어들을 내뱉을 뿐. 그 말은 삶에서 나온 것이 아닌 머리를 통해 입으로 나온 것이다. 시청자는 그 자리에서 웃을 뿐. 뒤돌아서면 남는 것이 없다. 청량음료이다. 예능계의 새싹들은 모두 그들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라인을 타려고 한다.
주말 저녁 텔레비전을 틀어 주의깊게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버라이어티가 넘쳐난다. 유재석 강호동, 혹은 그들의 복제판들이 '리얼'을 앞세워 시청자에게 채널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말장난과 몸 장난이 넘쳐난다. "시청자를 웃기는 것이 절대적 목표이다"는 말은 생각 없이 남용되고 있다. 말초감각을 자극하는 개그. 주말 저녁 스트레스는 확실히 풀어준다.
이는 평일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매일 한개 이상씩 이어지는 토크쇼들. 개인의 신변잡기에 불과하다. 토크의 목적은 웃음 혹은 폭로. 진행자는 이를 강요한다. 시청자 역시 마찬가지로 이를 강요한다. 여기서 말초감각의 자극은 또 다시 이어진다. 심지어 주목받기 위해 없는 얘기를 지어내기도 한다. 한국의 방송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런 현실에 대한 도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0년 들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일밤)는 봉사 혹은 공익을 위한 코너 3개를 발표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 "주말 저녁 시청자가 2시간에 걸쳐 공익적 방송을 시청한다는 것은 너무 힘겨웠다"는 것이 분석된 참패의 이유였다. 결국 리얼 버라이어티를 전면에 내세워 시청률 사냥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김제동의 감성적, 논리적 개그는 설 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 세상이 그에게 원하는 것은 말초적 자극. 그러나 그가 가장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진솔한 토크. 감성적 콘서트, 시사적 개그쇼 등은 설자리를 잃은 지 오래. 쉽게 말해 그는 현재의 방송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줄줄이 하차했다.
김제동의 하차가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란 논란도 있다. 소위 말하는 '블랙리스트' 논란이 그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증명은 대단히 어려운 만큼 김제동도 하소연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하소연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현재의 방송 현실이 그것이다. 시청률을 좇는 방송과 자극적 웃음만을 좇는 세상이 대세를 이루는 한 그가 설 자리는 없다.
한편 김제동은 7월 22일부터 MBC 새 프로그램 '7일간의 기적'의 단독 MC를 맡아 진행하게 됐다. 물물교환을 통해 우리 이웃과 자연스레 접촉하고 그 얘기를 전하는 '휴먼 로드 버라이어티'이다. 김제동은 "가장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목요일 오후 방송. 시청률은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래도 김제동의 개그에 매료되는 시청자는 있을 것이다.
- 출처 : 뉴스엔(newsen.com) 박정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