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조혜련(38·사진)이 또 한번 일을 냈다. 맨몸으로 일본에 진출한 지 2년6개월 만이다. 그간 TBS 시사 버라이어티쇼 '선데이 재팬'과 간사이TV의 토크쇼 '오조마마피'로 영역을 넓히더니, 이번엔 NHK 프로그램인 '니혼쓰(일본통) 리스트'의 공동진행자 자리를 확보했다. 최근 파일럿 프로그램이 전파를 탔으며, 내년 초에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된다. 이미 8월에 녹화를 마치고도 '방송 나간 뒤에나 보자'며 조심스러워했던 그를 만났다.
“새로 맡은 프로그램은 외국인의 시각으로 일본 관광지를 소개하는 겁니다. '조사원'이 돼서 남들이 지나치기 쉬운 관광 아이템을 짚어주죠. 가령 주제가 아사쿠사 신사라면 딱 그곳만을 하는 게 아니고 주변까지 조사해 관광 코스로 만드는 거죠. 이 프로그램에 캐스팅되기 위해 오디션을 봤어요. 일본 연예인들도 여럿 면접을 봤다더라고요.”
만나자마자 새 프로그램 '홍보'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이제는 몇 개 프로에 출연했느냐보다 어떤 프로에 나왔느냐는 걸 생각할 시점이죠. 얼마 전 '헤이x3' '런던 하쓰' 등 일본 간판 오락프로에 나갔던 건 그래서 의미가 깊죠. 최근 요미우리TV의 '오와라이 게닌노 나케루 하나시(개그맨들의 눈물의 이야기)'에 출연한 뒤로 '일본 활동이 업그레이드됐구나' 하고 느껴요. 일본 최고 코미디언 31명이 나와 3분씩 가장 감동적인 사연을 말하는데, 거기서 유일한 외국인으로 나와 1등을 했어요. ”
일본 얘기가 더 나오기 전에 물어야 할 것이 있었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궁금했다. 왜 국내에서도 인기가 한창일 때 새로운 도전을 생각했는지 말이다.
“5년 전 일본에 간 게 계기였죠. 예전과 달리 일본인들이 “한국말이다” 하며 관심을 가지는 걸 보고 꿈을 키웠어요. 영화·드라마에 비해 교류가 덜한 오락 버라이어티에서 가능성을 엿봤어요. 하루 8시간씩 일본어에만 매달렸죠. ”
일본으로 건너간 뒤 그가 겪었던 고생은 널리 알려져 있다. 보통 신인처럼 PD들에게 명함을 뿌리고 '골룸' 같은 '독한' 개인기를 선보였지만 외면당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그런데 이제는 연말에 최고 연예인만 출연한다는 '홍백가합전'에 섭외될 만큼 내공을 쌓았다.
“일본의 대표 개그맨 아카시아 산마가 진행하는 '오도루 산마고텐(춤추는 산마저택)'에 처음 출연했죠. 그런데 한국처럼 리액션을 크게 하고, 모르는 질문엔 '모른다'라고 솔직하게 답했더니 막 웃더라고요. 그때 '아, 내숭 없고 털털한 조혜련 캐릭터를 일본에서도 살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죠.”
일본 TV에 나오는 그를 보면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대단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다 보니 아직도 방송 중에 한국말이 튀어나갈 때가 있어요. 말이 서툴어 바로 받아치지 못해서 안타까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8개월 전부터 일본인 11명과 함께 살고 있어요. ”
가족 얘기가 나와 내친김에 두 아이 이야기도 물었다.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떨어져 사는 엄마에 대해 불만은 없을까.
“처음엔 미안했지만 이젠 아이들에게 '엄마는 바쁘게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가르쳐요. 제 엄마도 바빠서 저를 잘 챙겨주지 못했지만 큰 뒤로는 원망해 본 적이 없거든요. 제 아이들도 그럴 거라 믿어요. ”
가족과의 단란한 생활도 포기한 채 일주일의 사흘을 한국에서, 나흘을 일본에서 지내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그의 포부는 뭘까.
“일본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개그맨이 많아요. 사카이 마사야키, 구로야나기 데쓰코 등도 다 예순이 넘었죠. 하지만 녹화가 길어져도 모두 힘들다는 불평 없이 일해요. 한국처럼 “내가 선배니까 나 먼저 찍어줘” 하는 일이 없더군요. 그런 일본 연예계를 보며 60,70이 돼도 개그맨을 천직으로 알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